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서버 점검 공지
|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고대 로마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로마의 이모저모 == * 로마 시절에 너무 잘나갔는지, 후손인 [[이탈리아인]]들은 [[세기말]] 막장 군대로서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새로운 전설]]들을 쌓고 있다. 오죽하면 로마인들 중 반은 국가 세우러 가다 죽고, 반은 국가 지키다 죽어서 이탈리아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농담으로 하는 말이고 로마를 이탈리아인만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대한 오류이긴 하다. 그리고 로마의 모든 신민이 라틴어로 대화한 것은 아니다. 대개의 지역은 토착어를 그대로 활용했고, 특히 그리스를 포함한 동부 지역은 라틴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여기에 로마인들이 공부한 문학의 대부분이 그리스어 작품이라 적지 않은 상류층은 그리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당장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 하더라도, <[[명상록]]>을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썼을 정도. 그리고 [[카라칼라]] 황제가 로마의 심장부에 건설한 대형 욕장에 부설된 공공 도서관에는 크기가 같은 방 두 곳에 라틴어 서적과 그리스어 서적이 각각 배치되었다는 점만 봐도 제국에서의 그리스어 위상이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만 하더라도 그의 모국어는 당시 중동 지역 토착언어인 [[아람어]]였으며, <신약성경>과 초대 교부들의 다수 문헌이 학술 언어인 그리스어로 서술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라틴어]]가 완전히 학술적으로 찬밥이었던 건 아니고, [[서로마 제국]] 말기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어로 저술 활동을 했으며 [[그리스어]]와는 친숙하지 못했다.(『고백록』 1, 13, 20) * 제국이 된 이후에는 로마의 인구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농지는 전쟁 등으로 버려지거나 했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곡물을 [[지중해]]의 뱃길을 통해 수입해야 했다. 이 시기에 로마로 오는 식량의 주요 생산지는 지중해를 통해 식량 공급을 하기에 용이했던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였다.[* 흔히 [[북아프리카]] 하면 [[사막]]을 떠올리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북아프리카]] 해안가는 [[올리브]]와 [[밀]] 생산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대 카르타고의 영역이었던 [[튀니스]], [[알제리]] 지역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도 풍부한 밀 생산량을 자랑했다. 고대부터 '제국의 [[빵]] 바구니' 소리를 들었던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탈리아의 농사가 완전히 폐농한 건 아니고, 밀 농사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값싼 곡식과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밀 대신 [[포도]]나 올리브 등의 재배에 주력하게 되었다. 물론 개중에는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밀 농사를 짓는 농장도 없지 않았고 기본적인 식량이었기 때문에 양으로 따지면 언제나 주류였다. * 유럽 문화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로마지만 의외로 [[독서]] 문화 자체는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다. 로마 시대에는 [[프린터]]나 [[복사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하다 못해 [[인쇄]]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필사해야 했으며 당시에 책이라는 물건 자체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다만 제본 방식이 두루마리 형태에서 현재의 방식으로 바뀌었던 것은 로마 시대에도 일어났다.] 로마 시대에 [[책]]은 어디까지나 장식품으로 여겨졌으며, 독서보다는 [[연설]] 능력이 더 높게 평가되었고, [[철학자]]들의 능력도 독서와 강연을 통해서가 아닌 연설과 대화를 통해 길러졌다. 심지어 일자무식인 장군들이 외부로 원정 나가서 전리품으로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장식품으로 집안에 진열해 놓으면, 종이가 부족한 로마 본토에서는 이 위에 덧칠해서 새로운 책을 만들었을 정도. 그래서 로마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책들 다수에는 뒷면에 고대 그리스, [[중동]]권의 글이 쓰여져 있다. 현대에는 기술적으로 이 둘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 로마가 위치한 [[라티움]] 지방에서는 가장의 권위가 막강했는데, 가장의 권한은 세습되기도 했다. 가족 내의 가부장권은 사회로 확장되어 파트로네스(보호자)-클리엔테스(피호민) 관계로 확장되었다. 다만 파트로네스는 가부장권에서 확장된 피호민에 대한 권리보다 피호민에 대한 의무가 훨씬 더 무거웠고, 이는 로마 사회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 * 영미권에서 남자는 매일 로마 제국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밈이 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