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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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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들의 일화 == 경제학사에서 최고로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보통 [[애덤 스미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꼽는 사람이 많은데, 이 둘이 남긴 말이 아주 재미있다.[* 여담으로 두 사람은 모두 [[6월 5일]]에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토드 벅홀츠는 자신의 경제학설사 교양 서적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서 경제학 역사상 가장 겸손한 말로 이 두 사람이 남긴 말을 꼽았다. * 스미스는 교수를 잠시 그만두고 [[가정교사]]를 하던 시절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요즘 '''시간을 때울 겸 해서''' 책을 한 권 쓰고 있습니다"라고 썼는데, 그 책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시초가 된, [[보이지 않는 손|근대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 소개된 [[국부론]]'''이다. * 케인스는 명석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과목을 전전했다. 케임브리지 학부 과정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케인스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 그가 King's college the Apostles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보면 바보였을 리가 없다.][* 케인스가 머리는 비범했지만, 유독 수학 분야에 있어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수학만 못하거나 수학을 싫어하는 천재 부류에 속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많다. 당장에 케인스가 만든 이론이나 저작을 보면 도통 수학을 쓰지 않고 다 말로만 자기 생각을 적어놨기 때문. 지금 케인스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방정식이나 수학 이론들은 다 케인스를 따르던 후대 경제학자들이 케인스가 써놓은 글을 수학 식으로 옮겨놓은 거일 뿐이지, 실제 케인스는 본인의 이론을 정립할 때 수학을 기피한 건지 일부러 안 쓴 건지는 몰라도 수학을 도통 사용하지 않았다.][* 또 케인스는 대학 재학 당시 철학과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수학과에 들어가게 된 건 경제학자였던 부모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경제학적 업적들은 미시 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엄밀한 증명보다는 그의 천재적인 직관에 의한 것이 많고, 이는 나중에 케인스학파가 통화주의학파와 신 고전학파에게 공격받는 원인이 된다. 새 케인스학파에 이르러 많은 경제학자가 그의 직관을 미시경제학적 뒷받침 아래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천재로 불리던 그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시기였는지 친한 친구에게 "나는 지금 내 지성을 탈진시키고, 내 감성을 파괴시키며, 내 천성을 썩히는 중이라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태어날 때부터 희대의 천재라고 자타공인됐던 그는 유명한 케임브리지 수학 트리포스 시험(졸업시험)에서 12번째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낙담한 케인스는 2차 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심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케인스는 전체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물론 이 결과는 수학 과목이랑 경제학 과목 성적 이 두 성적만 처참해 평균을 깎아먹어 생긴 결과여서 만약 수학이나 경제학 성적을 좋게 받았으면 전체 수석도 가능했을 상황이었다. 이후 공무원 생활을 하던 케인스는 자기랑 안 맞는다고 관청을 때려치우고 나와 마셜 아래 들어가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케인스는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원론 1권[* 어찌 보면 케인스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를 바꾼 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셜은 경제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경제학적 직관'이라는 것을 강조해, 수학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경제학적 직관에 기반한 설명으로 경제학을 서술했는데 딱 철학에 관심 많고 수학에 약한 케인스의 취향에 들어맞는 교과서였던 것. 이 책 덕분에 케인즈는 경제학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끝내는 본인이 직접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의 영역을 만들어 버리고야 만다.]을 집어들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셜은 이를 기특하게 여겼는지 논문 여백에 격려하는 글을 써서 돌려주었다. 이에 고무된 케인스는 친구에게 "'''어쩌면 난 경제학에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외에 경제학의 태두를 꼽는다면 반드시 선정되는 인물이 [[앨프리드 마셜]]이다. 케인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마샬은, 경제학은 수학이 아니라 실제 인간사회에 살아 숨쉬며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실제로 원래 수학자였던 마샬은 런던 빈민들의 비참한 삶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고 이때의 충격으로 경제학 이론에 매달리게 된다. 교수 시절 그의 교수실 문에는 '런던 빈민가에 가보지 않은 자, 이 문을 두드리지 말라.'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며, 특히 모든 경제학도는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가 가슴에 새기면서 현대 경제학의 태동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상기시켜주는 명언을 남겼다.] 때문에 미시경제학적 수리 분석을 다 만들어 놓고도, 자신의 저서에서는 수리적 내용을 가급적 배제하고 작성했다. 이 때문에 이후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마샬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우리에게 멀리 돌아가는 길로 고생하게 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겸손하지 않은 경제학자의 경우도 많다. 특히 그 케인즈가 그런 말은 많이 했는데, 일례로 "신의 아들로서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내가 자네들과 같은 범인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구만" 이라고 학회 강의 중에 이야기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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