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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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43 | 처음 1500년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에는 남미 대륙 일부가 아니라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라크루즈 (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시대에 "산타크루스(성스러운 십자가)의 땅"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는 이름을 선호했고, 16세기에 브라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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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45 | === 독립 === |
46 | 반도 전쟁은 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브레 연합알가르베 연합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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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반도 전쟁은 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브레 연합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포르투갈 정부는 반다 오리엔탈의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가 이끄는 연방 동맹과 전투를 통해 반다 오리엔탈을 지배하였으며, 정복한 지역에 시스플라티나 주(Cisplatina)를 설립했다. 1820년 포르투갈을 자유주의적인 입헌군주국으로 변혁하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앙 6세가 귀국을 요청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섭정으로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의 황태자 페드루를 죠제 보니파시오를 대표하는 브라질인 세력이 지지하여, 1822년 9월 7일에 페드루는 황제인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에 즉위하여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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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48 | === 민정 이후 === |
49 | 49 | 1985년에 민정 이양을 하고 문민 정권이 부활했지만, 탄크레두 네베스가 급사했기 때문에 부통령이었던 조제 사르네이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확대로 인해 경제는 악화되었고, 사르네이 정권은 국내에서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라울 알폰신 정권 하의 아르헨티나와의 관계가 이 시기에 크게 개선되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양국의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0년 국가재건당 후보인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경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해 수많은 부패와 각종 기행을 남기고, 1992년에 파면되었다.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가 이어받은 후 1995년 브라질 사회민주당에서 취임한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정권 하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는 같은 해 메르코수르(남미 공동 시장)를 발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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